성경은 사람의 말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운다고 야보고서는 말합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혀는 내 몸의 지체이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말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음에 없는 이야기이라도 순간의 감정으로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단어들을 끄집어 내어 말로 표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 과학자는 쌀을 끓여서 동일한 두 용기에 분배한 후 일정기간 동안 말의 힘을 실험했다고 합니다. 첫째 쌀 용기는 칭찬과 긍정적이고 유쾌한 말을 해 주고, 둘째 쌀 용기에는 모욕, 경멸, 증오심을 표현하는 말을 내 뱉었습니다. 놀랍게도 긍정적인 말을 들은 쌀 용기에서는 쌀이 상하지 않고 유지된 반면, 부정적인 말을 들은 쌀 용기에는 곰팡이가 피어 악취가 났다고 합니다. 말은 이렇게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말은 품고 있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말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 물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 마음 속의 긍정적인 뜻을 말해도 말하는 사람의 태도나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부정적으로 꼬여 있을 때에는 곡해되어 전달되기도 합니다. 말은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되는데 오히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말하고 진실을 말해도 자기 경험과 철학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은 듣지 않습니다. 또 말의 범위가 듣는 이의 지성을 초월해 있을 때 같은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동일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가르칠 때 좋은 교사가 됩니다. 배우는 사람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해야 제대로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의 소통은 말하는 화자 토커 talker 나 듣는 청자 리스너 listener가 모두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배우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가르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을 안 하실 정도였습니다. 창조주 예수님의 지식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으면 알 수 있는 개념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의 한계와 이해의 체계를 아시고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비유를 들었지만 그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바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풀어 주실 때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말의 소통 원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서로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이해하고 예를 들어 이야기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꼬리를 잡고 예수님을 정죄합니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었습니다. 말의 이해를 위해 청자와 화자가 모두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C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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